크리스마스가 다가오면 생각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오 헨리가 쓴 ‘크리스마스의 선물’입니다.

가난하지만 서로 사랑하는 부부 짐과 델라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가난했지만, 짐은 할아버지 로부터 물려받은 시계가 자랑거리였으며, 델라는 길고 아름다운 갈색 머리카락을 자랑거리로 삼고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가 다가오자 델라는 가난한 살림에도 불구하고 남편에게 선물을 하려고 돈을 모았지만, 모은 돈은 고작 1달러 87센트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그 돈으로는 짐의 크리스마 선물을 사줄 수 없었습니다.
이런저런 고민끝에 델라가 옷을 챙겨 입고 찾아간 곳이 바로 두발 용품 가게였습니다. 그곳에서 자신의 긴 머리를 잘라 20불을 받고 팔았습니다. 델라는 이 돈을 받아 들고 설레이는 마음으로 짐의 선물을 사기 위해서 여기저기 돌아다니다가 짐의 시계와 딱 어울리는 시계줄을 발견하고 20불을 주고 사왔습니다. 짐의 낡은 시계줄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선물을 사가지고 집에 돌와서 자신의 흐트러진 머리를 단정히 하고 저녁을 준비하면서 짐을 기다렸습니다. 설레이는 마음으로 짐을 맞이했지만, 짐의 표정이 어두워 보였습니다. 자신의 머리 때문이라고 생각한 델라는 머리는 곧 자랄 것이니 그 때문에 너무 실망하지 말라고 짐을 달랬습니다.
그때 짐은 델라를 위해 사온 선물을 테이블 위에 꺼내놓았습니다. 델라가 그렇게도 원했던 머리핀이었습니다. 짐은 자신의 시계를 저당잡히고 사랑하는 델라를 위해서 머리핀을 사왔지만 델라에게는 그것을 꽃을 긴 머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잠시 후 델라도 짐을 위해 사온 선물을 꺼내 놓았는데 그것은 백금으로 된 시계줄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흐뭇한고 따뜻한 크리스마스를 맞이했습니다. 참으로 가슴 따뜻한 이야기입니다.

올해도 어김없이 크리스마스는 찾아오고 있지만, 주변의 가정들을 살펴보면 이런 따뜻한 이야기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한국 사회는 최근 몇년 동안 급속하게 가정이 해체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주로 남성들의 경제적인 문제와 여성들의 급격한 의식 변화였습니다. 요즘은 중년 이혼의 80%가 여성들이 원해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남편과 자녀들에 의해서 자신들의 삶을 포기해 왔다고 생각하는 여성들이 늘어나면서, 자신의 삶을 위해서라면 가족을 포기해도 된다고 하는 생각들이 만연되고 있는 반면, 남성들은 이러한 여성들의 변화를 읽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이 황혼 이혼이 증가하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제는 교회에서도 기독교적인 책임과 의무만으로 가정을 지키기 힘든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인간의 자유와 감성을 강조하는 포스트모더니즘 사회가 도래하면서 가부장적인 권위가 도전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국사회에서는 정통성과 도덕성을 갖추지 못한 국가의 권위가 먼저 도전을 받게 되었고, 그 다음으로는 학교 교사들의 권위가 도전을 받게 되었으며, 이제는 가정이 도전을 받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영향은 교회라고 예외가 아닙니다. 교회도 마찬가지로 그 권위가 거센 도전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는 한국사회의 문제만이 아닙니다.
이러한 영향력 때문인지 크리스마스라는 이름이 점차 Happy Holiday 또는 Great Holiday라는 이름으로 바뀌어가고 있습니다. 표면상의 이유는 종교적인 차별을 없애기 위한 것이라지만 꼭 그것만은 아닐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를 세속화시키려는 의도가 숨어 있는 게지요. 우리 사회는 지금 예수가 없는 크리스마스를 맞이하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크리스마스가 비기독교인까지 포함하는 모든 이를 위한 절기라고 해도 그 뿌리까지 무시하고 넘어 가서는 안 될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분명히 그리스도의 탄생을 축하하는 날입니다.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예수님입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를 살펴 보면 크리스마스의 주인공은 점점 탈기독교화된 산타크로스가 되어가고 있으며, 크리스마스는 쇼핑을 위한 절기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전통적으로 크리스마스는 가난한 이웃을 위한 계절이고, 용서와 화해의 계절인데, 그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어 가고 있는 듯하여 안타깝기도 합니다. 그래도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설레이는 계절입니다. 이 설레임 속에 크리스마스의 본질적인 의미를 잘 유지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그 의미를 되새겨봅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의 사랑을 누리는 계절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분의 가장 사랑하는 아들을 우리에게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전부를 우리에게 주신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에 감사로 반응하고 예배하는 절기가 크리스마스입니다. 언젠가 우리 아이들에게 선물을 사준 적이 있습니다. 고심끝에 고른 선물인데 우리 아이들이 그 선물에 관심을 갖지 않았습니다. 너무 속상했습니다. 사랑의 선물을 주는 이는 받는 이가 감사함으로 즐거워할 때 행복한 것입니다.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통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은 크리스마스로 인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크리스마스는 용서와 화해의 계절입니다. 예수께서 평강의 왕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소용돌이치는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서 살아야 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쟁과 노역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꿈은 당시의 시대적인 갈망이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인간의 죄는 하나님과 소외와 단절을 야기시켰으며, 하나님과의 단절된 인간은 늘 불안과 갈등 속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죄는 분열을 야기시키는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우리에게 용서와 화해를 선포하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화해의 사역을 부탁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그리도인들은 화해의 중보자들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화해를 시도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상처 준 사람들을 먼저 용서하고 화해하는 일이 그리스도의 평화의 메시지를 간직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아픔을 간직하고 있는 가족들이 화목하게 되는 일들이 많이 일어났으면 좋겠습니다. 

크리스마스는 나눔의 계절입니다. 산타클로스는 3세기에 마게도니아 지방에 살았던 성 니콜라스라고 하는 실제 인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자기의 가진 것을 불우하고, 춥고, 배고픈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것이 하나의 전통이 된 것입니다.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이 기아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지난 주에는 필리핀에서 역사상 가장 강력한 슈퍼 태풍 “하이엔”으로 수많은 사상자 및 이재민이 발생했습니다. 국제 사회 여기 저기에서 구조의 손길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고보니 북한 동포들이 생각납니다. 이 추운 계절을 어떻게 보낼지 걱정입니다. 슈퍼 태풍으로 인하여 고통받고 있는 필리핀 사람들에게도, 북한 동포들에게도 그리스도의 평화가 임하길 기도해봅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무엇인가 나누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의 주변의 가난하고 소외되어 있는 사람들도 잊지 않으면서.

크리스마스는 언제나 나눔이 있어서 풍성했습니다. 따뜻한 추억이 있어서 그립습니다. 금년 크리스마스에도 그리스도의 화해의 메시지가 육화되어 우리의 삶 가운데 나타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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