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크랩은 그의 책 [Finding God]에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지적하고 있습니다. 상당히 많은 도전이 되어서 그 내용을 소개합니다. 그에 따르면, 오늘날 현대인들은 하나님을 발견하기보다는 자신을 발견하는 쪽으로 관심의 축이 옮겨져서 자아실현과 자기애가 지고의 선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학대 받고 상처입고 부족하게 보이는 자신에게 모든 관심을 집중하다 보니, 하나님은 저 만쯤 대기하고 있다가 우리의 상처를 싸매 주고 우리의 부족한 것을 채워 주시는 존재, 우리를 그럴 듯한 존재로 만들어 주는 존재 전락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이에 부응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가치 있고 사랑 받을 만한 존재로 느끼게 해주는 일이 중심사역이 되어가고 있으며,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해소에 사용하는 에너지가 점점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물론 우리가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기 위해서는 우리의 내면의 거짓되고 쓰라린 상처들을 치유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 내면의 상처를 무시한 채로 의무감에만 사로잡혀 신앙생활을 할 때에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못 맺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복음이 주는 축복 중에는 우리가 존중 받고 기쁘게 우리의 자아를 실현할 수 있게 하는 삶도 있지만, 그와 동시에 자기 실현보다 더 높은 가치, 다시 말해서 자기 부인과 희생적인 섬김을 통해서 하나님을 예배하고, 고난을 감내하고, 원수까지도 용서하며, 하나님의 약속을 굳게 붙잡으라는 부르심도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들까지도 자기 상처를 회복하고, 자기를 그럴 듯한 존재로 인정받는 데 집중되어 있는 나머지, 세상이 우리를 감당치 못할 사람으로 만드는 자기 희생과 섬김의 고귀한 가치가 시련을 맞고 있다고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래리 크랩은 오늘날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태도는 손님을 정성껏 접대한 웨이터에게 팁을 주는 자세와 같다고 말합니다. 적정 수준의 접대를 예상했는데, 의의로 훌륭한 접대를 받으면 팁을 더 많이 주듯이 말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문제를 해결해 주고, 하나님이 우리를 그럴 듯한 존재로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하고 찬양한다면, 순서가 잘못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향한 열망이 어떤 열망보다 강력해지지 않으면 우리의 문제는 해결될 수도 없고,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그것은 영적이지 않기 때문에 결국은 허무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참으로 생각해 볼 만한 이야기 아닙니까?

래리 크랩은 이러한 현상을 자기중심주의의 질병이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가 3가지를 알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평강은 삶이 힘겹고 자존감이 낮은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심을 확신하는 사람들에게 임한다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알고 만족하는 상태를 평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것이야말로 큰 오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에 대한 확신이 없을 때에는 결코 평강을 누릴 수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이라고 말합니다.

오히려 고난 가운데서도 그 현실을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고 신뢰할 때 비로소 하나님의 평강이 찾아온다는 것입니다. 사실 내적 치유도 궁극적으로는 상처로 인하여 부서진 하나님의 평강을 회복하기 위한 것이기에 하나님의 선하심을 믿는 것이 치유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 자아에 대한 환상을 버리고 더 가치 있는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에 관심을 쏟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시고, 내가 하나님을 위해 존재하지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아실현에 대한 무한한 환상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간적인 자아를 실현하는 것이 최고의 선이라고 하는 가정에 기반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구나 현대인들은 자아실현이라는 것을 고상한 도덕적인 이상이나 인류를 위한 자기 헌신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을 실현하는 것쯤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가는 것이기에 하나님이 자아 실현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자아 실현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야 합니다.
셋째, 당면한 문제 해결을 하나님보다 우선시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무슨 짓이든지 하겠다고 하는 태도야말로 세상적이고 하나님께 불경한 사단의 생각이라는 것입니다. 하용조 목사님은 [기도로 돌파하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어려운 문제가 생기면 마음이 급하여 자신을 도와줄 사람부터 찾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문제가 빨리 해결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이 방법, 저 방법 다 써보다가 결국 안 되면 제일 마지막에 하나님께 매달립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은 마지막에 선택합니다. 그분께 언제 응답이 올지 모르니 기다릴 여유가 없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21장을 보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실의에 빠진 채로 물고기를 잡으러 나갔던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이 처음에는 예수님이신 줄 몰랐으나 함께 물고기를 잡으면서 알았습니다. 그분이 예수님이라는 것을.

제자들과 함께 조반을 드신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물으셨습니다.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이 때 베드로의 대답은  “예! 내가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 않고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이 아십니다”라고 했습니다. 저는 이 대답이 매우 감동스럽습니다. ‘내가 비록 주님을 3번이나 부인했으나 주님이 내 마음을 이미 알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마음의 고백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이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이제는 주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주님은 내 삶에 있어서 그 누구보다도, 그 어떤 것보다도 가장 소중한 분이십니다. 상처로 인해서 힘들어하고 있는 우리들에게 주님은 이렇게 물으실 것만 같습니다. “네가 이 상처들보다 나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

다시 말해서, 만약에 네가 너의 상처들을 해결하는 것보다 하나님 만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고 물으신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쉽게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입니다. 말로는 얼마든지 이 상처들보다 주님을 더 중요하게 생각한다고, 내 상처를 해결하는 것보다는 주님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할 수 있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답하기에는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상처가 우리를 너무 아프게 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분명하게 압니다. 주님이 우리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분이 될 수 있을 때, 그래도 하나님은 선하신 분이라는 것을 믿을 수 있을 때에 우리가 치유될 수 있고, 세상을 치유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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