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나와서 가장 많이 듣는 단어는 아마 “믿음”이라는 말일 것이다. 모든 것이 믿음으로 통한다. 잘 되어도 믿음이 좋아서이고, 또 못 되면 믿음이 부족한(?) 까닭이다. 이 믿음이라는 것이 무엇인가? 또 우리들이 하나님을 온전히 믿는다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실제로 우리 삶을 통해 많은 일들을 겪고 있고, 또 지금 이 순간에도 그 모든 문제들을 어떻게 해서든지 잘 극복해 보려고 하나님 앞에 매달려 기도하면서, 더 큰 믿음 달라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아뢴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우리 마음 속에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는 두려움이 늘 앞선다.
뭔가 확실치 않기 때문에 걱정을 하게 되고 마음이 무거워지며 그러다보니 믿음이 없는 내 모습을 보면서 더욱 답답해지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 예수 믿는 사람들이 믿는다고 하면서도 바로 이 믿음 때문에 늘 고민을 한다.

우리 신앙인들(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다 내어놓고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 삶의 목적을 이제 하나님께로 맞추고 삶의 우선순위를 하나님께로 두고 방향을 이미 고정시켰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것들을 그런 대로 포기하고 산다.
주일에 아무리 유혹이 와도 교회로 먼저 발걸음을 옮기고, 재정적으로 어렵고 힘들어도 하나님 앞에 드려야 할 것은 먼저 떼어 놓는다. 술 담배와 같은 것들도 누가 뭐래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거룩한 삶을 살기 위해서 작정하고 멀리한다. 나름대로 노력하면서 살고 있다. 이처럼 많은 부분에서 자신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고 실제로 포기의 삶을 살아간다.

하지만 정말로 내 자신을 다 포기했다고는 말하기가 민망한 것이 사실이다. 항상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선 이런 생각이 든다. “내가 그래도 이만하면 괜찮지... 내가 겸손히 있어서 그렇지 꽤 훌륭하다고.” “내가 이래 뵈도 왕년에 한 가락 했던 사람이야.” “나를 시켜주지 않아서 그렇지 내가 누구만 못할까?”

하지만 내 자신을 포기한다는 것은 내가 가진 것을 하나씩 놓아버려서 다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죽이고 내 안에 그리스도가 살아서 주님의 뜻을 이루는 것을 말한다. 삭개오나, 열두 해 혈루증을 앓았던 여인이나, 베드로는 자신을 내려놓았던 사람이다.

자신이 가지고 있던 체면, 재물, 그리고 경험과 학식, 이 모든 것을 주님 앞에 겸손하게 다 내어놓고 주님께 무릎 꿇었던 것이다.
하지만 믿음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맡겨버리고 “이제 됐죠? 주님, 저는 주님 하라는 대로 했으니 주님께서 알아서 책임져 주세요.” 이렇게 무책임하게 도망가 버리는 것을 말하는 것 역시 아니다.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주님을 붙잡고 믿고 의지하고 따라야 한다.

시련이 있어도 인내함으로 하나님께 구하면 이루어 주실 줄 믿고 나가는 것이다. 세상으로부터 오는 ‘유혹’은 나를 무너뜨리고 결국에는 사망에 이르게 하지만, 내가 지금 당하는 ‘시련’은 우리들이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면 믿음의 과정을 거쳐 훈련이 이루어져서 결국에는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성장하게 되는 것이다.

우리는 나 자신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르라는 명령에 주저할 때가 많이 있다. 내 능력으로 주님을 따라갈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서 걱정을 하고 혹은 불평을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지혜를 주셔서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신다. 하나님의 의로움으로 지금 우리들이 겪고 있는 모든 일을 통하여 선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주님이 내 삶의 주도권을 쥐시고 이끌어 주신다는 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았다. 그래서 지금 이 순간에도 훈련하고 고된 인내의 과정을 거치고 있다. 이런 믿음이 있기 때문에 힘들어도 참고 견디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훈련과 반복이라는 하나님의 교육을 거쳐서 하나님의 쓰임을 받는다. 우리들이 이왕 부르심을 받았으면 귀하게 쓰이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그저 있으나 마나한 사람으로 머물기를 원하지 않는다.

그런데 하나님으로부터 멋지게 쓰임을 받지 못한다. 그 이유는 어디에 있는가? 결국 믿음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능력이 모자라서인가? 분명히 하나님께서는 후히 주시는 분이고 우리들에게 능력과 지혜를 주셔서 감당케 하시는 분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제대로 쓰임을 받지 못한다.

그것은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나님이 나를 사용하시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어떤 때는 하나님께서 아주 좋은 결과를 보여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내 마음에 들지 않으면 감사치 않고 오히려 불평하고 싫어한다. 모든 것을 나를 기준으로 판단한다.

하지만 하나님은 때로는 우리들의 상식을 깨기를 원하신다. 우리들의 믿음이 우리 사람의 수준을 좀 넘어가기를 원하신다. 결과와 상관없이 그저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은 하나님의 생각과 내 생각을 확실하게 구별해야 할 것이다. 마음 속에서 여전히 ‘내’가 나오면 당연히 하나님의 생각은 멀어질 수밖에 없다. 내가 원하는 결과에 집착한다는 말은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내’ 생각에는 지금 그 일이 꼭 성사되어야 할 것 같다. ‘내’ 계획으로는 언제 언제까지 일이 마무리되어야 한다. 하지만 하나님의 뜻과 내 뜻은 분명히 다르다. 어느 누구도 하나님의 생각을 앞서 갈 수는 없다.

베드로가 밤이 맞도록 고기를 못 잡은 것,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하나님이 보여준 기적과도 같은 일이다. 평생 어부였던 베드로가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았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이것은 실패가 아니라 축복이었다. 하나님의 완벽한 계획 속에서 일어난 일이기 때문이다.

한 마리의 고기도 못 잡고 그것으로 인해 ‘내’가 죽었을 때 베드로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체험한 것이다. 믿음은 내가 생각하는 결과와 상관없이 주님을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철저히 따르는 것이다. 베드로의 사명은 고기를 낚는 어부가 아니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는 것이었고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다.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베드로는 더욱 믿음으로 성숙해져야 했던 것이다.

온전한 믿음, 조금도 의심치 않는 믿음을 가지려면 내가 죽고 내 안에 예수님이 살아야 한다. 그리고 죽기까지 주님을 따라야 할 것이다. 내가 생각하고 기대하는 결과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뜻에 순종하면서 아직도 마음속 깊이 포기하지 못한 것이 혹시라도 있다면 이것까지도 주님께 드려야 할 것이다. 이것이 믿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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