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닌 사람이라면 주일학교에 관한 기억이 머릿속에 강하게 남아있을 것이다. 교회에서 했던 많은 유초등부 행사들, 그리고 주일학교 선생님과 친구들에 대한 기억이 떠오를 것이다.
교회에 갈 때 귀찮아서 옷을 아무렇게나 입고 나섰다가는 엄마에게 혼이 났다. 다시 방에 들어가서 제일 좋은 옷을 갈아입혀 주시고서야 교회로 보냈다. 뭐 그렇게 좋은 옷이 많이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제일 깨끗한 옷을 골라서 입혀 보낸 것이다. 미국에서도 이렇게 주일에 입는 옷들을 Sunday dress라 한다.

시카고 지역에서는 주일날 아침에 양복을 입고 정장을 한 사람들을 찾아보기 힘들지만 아직도 미국의 많은 지역에서 주일이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처럼 정장을 하고, 또 드레스에 모자까지 쓰고 교회로 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교회 갈 때에 헌금을 받아서 손에 꼭 쥐고 버스로 약 2-3 정류장이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갔다. 도중에 구멍가게도 있었고, 만화가게도 있었고, 얼마나 유혹이 많았는지 모른다. 하지만 잘 참고 교회까지 무사히(?) 갔다. 교회에 가서 그때 불렀던 찬송가, 설교 말씀 중 몇 가지, 그리고 주일학교 선생님의 모습이 지금도 머릿속에 생생히 기억이 난다. 아마 어린 시절에는 누구나 한 번쯤은 교회에 가본 경험이 있을 것이고 이런 기억들이 남아 있을 것이다.  

요즘은 교회가 곳곳에 있어서 안 믿는 사람들도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정도는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교회가 진정으로 무엇을 하는 곳인지, 어떤 곳인지, 무슨 목적에서 사람들이 모여 있는지 많은 사람들이 그 참 의미를 알지 못한다. 아니 우리 믿는 사람들 중에도 교회에 대한 목적을 이해하지 못하고 다니는 사람이 많이 있다는 말이다. 그저 교회를 막연하게 생각하고 어려서부터 다녔기 때문에, 혹은 친구의 권유에 끌려오게 된 사교적인 장소로 생각해서, 또는 가족이나 친지의 강권에 못 이겨서 교회에 나오게 되었기 때문에 당연히 교회가 무엇인지 모를 수도 있다.

우리 한국 사람들이 교회에 나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가족이나 친지 때문이라고 한다. 약 75-90%가 가족과 친지의 권유로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다는 말이다. 물론 처음에는 교회에서 무엇을 하는지 모를 수도 있고 잘 몰라도 문제될 것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교회를 계속 출석하면서도 교회가 무엇을 하는 곳인지 그 목적을 모르고 다닌다면 그것은 문제일 수밖에 없다.
흔히 공동묘지 같은 교회, 박물관 같은 교회, 극장 같은 교회, 잔칫집 같은 교회라 해서 네 종류의 교회가 있다고 말들 한다. ‘공동묘지 같은 교회’는 신앙생활이 이미 죽었기 때문에 사람들의 얼굴에 기쁨이 없고 의무감에서 할 수 없이 왔다 갔다 하는 교회이고, ‘박물관 같은 교회’는 옛날 것들을 보며 기뻐하는 것처럼 ‘그때 우리 교회가 이런 모습이었다.’라고 그리워하며 옛 생각만 하는 교회이며, ‘극장 같은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오지만 그곳에 있는 스타나 노래 잘하는 사람을 바라보며 박수치고, 나갈 때 돈 한 푼씩 놓고 나가는 교회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잔칫집 같은 교회’가 있다. 부자도 있고, 가난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 어려운 사람 모든 사람이 잔치에 초대되어 가득 차 있다. 먹을 것이 풍성하고 모든 사람들이 기쁜 모습으로 움직이는 그런 교회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참된 교회는 이처럼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사람들이 모여서 말씀으로 변화되어 풍성함을 누리며, 찬양과 기쁨이 넘치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눈물을 흘리는 잔칫집과 같은 교회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들이 지금 출석하고 있는 교회의 모습은 어떤 모습의 교회인가?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시기 전, 다시 말해 십자가의 구원 사역이 이루어지기 전에는 하나님께서 뽑으신 이스라엘 민족에게만 구원이 있었지만 이제는 누구든지 복음을 듣고 믿으면 그 구원에 이를 수 있게 되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따라 하나님의 권속, 쉽게 말해 가족이 된 것이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모시는 모든 사람들이 모여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하고 그 구원의 기쁨을 모든 사람들에게 전파하기 위해서 모인 곳이 교회이다. 어떤 누구도 환영을 받을 수 있고 차별되지 않는 곳이다. 
이런 목적이 분명한 교회는 당연히 예수 그리스도가 중심이 된다. 교회를 눈에 보이는 하나의 건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후 사도들이 성령체험을 하고나서 하나님의 교회를 세웠지만 그 교회의 기초를 예수님으로 해서 세운 것이다.
그리스도만이 온 교회를 지탱할 수 있고, 그리스도만이 신앙의 기준이고 표준이 되어서 움직이게 된다는 말이다. 혹시라도 우리들의 기초를 우리들의 이익이나 철학, 또는 우리들의 인간적인 관심사에 두고 교회를 세우고 유지해 나간다면 그것은 말이 교회이지 교회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해서 연합하여 성령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을 따라 모든 사역을 진행하는 곳이 교회이다.

그러므로 몇몇 사람들의 주장이나 그들이 원하는 관심사에 따라서 교회가 흘러가서도 안 될 것이고, 생각이 맞는 몇몇 사람들의 사교장소로 전락해서도 안 될 것이다. 교회는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가 바탕이 되어야 교회의 참 모습을 나타낼 수 있다.
또한 교회는 이 사람 저 사람이 우연히 만나서 모인 곳이 아니다. 예수 안에서 서로 연결된 유기체적인 공동체이다. 연결된다는 말은 그저 두루뭉술하게 적당히 넘어가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오히려 기술적으로 서로 맞춰지는 것을 의미한다. 교회에 출석하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의 성전으로 지어지기 위해서 서로 맞춰지고 연결되어서 살아있는 유기체로 변화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 모든 성도는 서로를 수용하고, 용납하고 감싸야 이 유기체는 생명을 유지하고 또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수 있게 된다.

돌이 많다고 건물이 세워지는 것이 아닌 것처럼, 성도가 많다고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다. 서로 연합하지 않으면 시끄러운 소리가 나는 시장밖에 될 수 없고 결국은 무너지게 될 것이다. 아직 완벽하게 완성되지는 않았지만 성숙해 가는 것이다. 서로 덕을 세우면서 자라가는 것이다. 교회는 이처럼 서로의 강점과 아름다운 은사들을 가지고 조화를 이루어 연합하여 성장해 나갈 때 하나님의 큰 역사를 이루게 되는 것이다.
천 개의 조각으로 된 퍼즐을 며칠에 걸려서 맞춘 적이 있다. 얼마나 힘들었는지 모른다. 처음에는 쉬웠지만 점점 어려워졌다. 몇 개만 빼놓고는 모두가 비슷해 보이고 색깔도 다 같아 보였다. 그러나 아무리 비슷하게 생겨도 맞히려고 하면 들어가질 않는다.
 천 개의 조각 중 한 개도 똑같은 조각은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아무리 많은 조각이 있어도 하나라도 없어지면 제 모습은 나올 수 없다. 그러나 다 맞추어 놓으면 참으로 훌륭한 작품이 된다. 바로 이 퍼즐처럼 모두가 한 마음이 되어 아름답게 하나가 될 때 우리들의 교회는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교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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