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신양숙(일리노이)


K 권사님은 며칠째 두통으로 머리를 들 수 없었다.  고단한 이민 생활에도 막내를 생각하면 힘이 절로 나곤 했는데 그 아들이 졸업을 앞두고 진로 변경 기도 요청을 해왔다.

공부를 유난히 잘해 어렵지 않게 들어간 명문대 졸업을 코앞에 두고 있었다. 졸업 전에 이미 회계사 자격증까지 갖추고 대기업에 취업도 되었기에 K 권사님은 더 충격을 받았다. 모든 여건이 힘들어도 막내만 졸업하면 짐을 덜리라며 견뎌 왔는데...

K 권사님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작은 비즈니스를 힘겹게 유지하면서도 동부 리그 명문대에 막내아들 J를 보내며 K 권사님은 희망에 찼다. 졸업 후 안정된 수입까지, 미래가 보장된 대학으로 떠나는 아들의 뒷모습이 K 권사님의 미래였고 희망이었다.

꼭 뭘 바래서가 아니라 부모로서의 책임감 같은 거였다. 그런 J가 졸업을 6개월 앞두고 신학을 하고 싶다고 했다. 보장된 미래를 버리고 목회자가 되겠다는 아들을 이해할 수 없었다. “목회자가 되어야만 하나님 일을 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요즘 같은 세상에선 삶이 하나님 나라의 현실이 되게 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으냐. 그러려면 삶의 현장에 있는 게 더 현실성 있는 목회가 아닐까”라며 설득해 보았지만 J의 생각은 단호했다.

한 달 동안 서로 기도해 보기로 협상하고 기도를 해보았지만, K 권사님은 도저히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다. 늘 부모와 누나들에게 순종적이고 착하기만 했던 J의 확고한 자기 주장이 낯설어서 K 권사님은 더 적응이 안 되었다.

생각해 보니, J가 고등학교 수련회때 하나님을 깊이 만난 적이 있었다. 그때도 목회자가 되고 싶다고 했으나 가족의 반대로 포기했다. 열심히 성경을 공부하고, 기도하고, 봉사 활동을 했다. 주변에서 대학 가면 아이들이 교회를 떠난다는 소릴 들었지만, K 권사님은 그런 걱정을 안 했다. J에겐 늘 하나님에 대한 갈증이 있다는 걸 알았기에 그런 걱정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이런 결과를 가져올 줄은 몰랐다.

한 달 후 K 권사님의 가족은 J와 마주 앉았다.

 “왜? 하필이면 너냐?!”

K 권사님이 역정을 내자, J는 엄마를 안아 주었다. 엄마의 마음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J는 부모님께 너무 죄송해서, 지난 3년 반 동안 혼자 고민해 왔다고 했다. 가족의 반대로 목회자의 길을 잠시 미룬 것이지, 단 한 번도 그 길을 포기한 적이 없었다고 했다. J의 대답은 간단명료했다.

“엄마, 아빠! 진짜 영광을 보니까 세상 아무것도 그 영광보다 중요하지 않던데요. 고등학교때 그 영광을 만나고 그분이 내신 길, ‘내가 길이요’ 하신 그 길을 따라 걷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그분이 사랑과 은혜로 내 발걸음에 맞춰 함께 걸어 주시는 걸 경험했어요.” 

“부모님을 생각해 길을 바꿔 달라고 기도도 해보았지만 그분은 오히려 나를 바꿔 그 길을 더 분명히 걷게 하셨어요. 그 길은 걸으라고 있는 길인데 수많은 사람들이 그 길을 만나고도 그 길 앞에서 망설이고 서성대는 모습을 주님은 안타까워하셨어요.”

“저는 그 길을 걸어도 괜찮다고 말해 주고 싶고, 그 길을 걸어야만 경험하게 되는 부활의 나라로 안내하는 안내자가 되고 싶어요. 그래서 이젠 더 이상 미룰 수 없어요”

 K 권사님은 부끄러워서 얼굴을 들 수 없었다. 자신의 이중성이 부끄러웠고, 예수님의 가르침과 부모의 가르침을 진지하게 살아내는 아들의 진실함에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다. K 권사님은 할 말을 잊은 채 가족이 둘러앉아 J를 위해 기도할 때 염치없는 눈물만 흘렸다.

지금 K 권사님은 J를 신학대학에 보내고, 다른 희망을 품고 다함없는 기도 후원자가 되어 J를 응원하고 계신다. 세상의 혁명은 자리 바꿈의 혁명이지만, 예수님의 혁명은 사랑의 혁명임을 아들이 걷는 길을 통해 입증해 내길 기대하면서...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저작권자 © 크리스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