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지음 / 김영사 펴냄(2022.6)

『눈물 한 방울』은 2019년 10월부터 2022년 1월까지 공책에 기록한 지은이의 마지막 육필 원고이다. 저자는 2022년 2월 26일 별세했으니, 한 달 전까지 글을 쓴 셈이다. 공책에 쓴 글을 낙서라고도 불렀지만, 지은이는 스승이자 작가라는 자신의 정체성을 마지막 순간까지 잊지 않았다.

“변소 벽에는 항상 낙서가 무성하다 사적 공간이면서도 막상 어떤 개인도 소유할 수 없는 공적 공간, 이 아이러니 속에서 탄생하는 낙서 역시 가장 은밀한 것이면서도 공개된 벽보와 같이 노출되어 있다. 내가 낙서를 다시 계속해 가야 할 이유다.” (본문 일부)

죽음을 밀어낼 수도 없고, 죽음이 기다려지지도 않는데, 그렇다고 기다리지 아니할 방도도 없이 막막한 죽음 앞에서 끄적인 지은이의 글이 읽는 이의 귀에는 오히려 알짬 생명을 향한 갓난아기의 울음소리처럼 들린다. 어쩌면 저자가 말한 죽음의 죽음이 죽음이 이기지 못하는 생명의 승리, 영생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은이는 글 쓸 기운도 없는데, 책을 주문하고, 전자책을 읽는다며, “죽음 앞에서 머뭇거리게 하는 그런 소중한 것이 이 껍데기뿐인 인간의 삶에 있었다면 하나님 용서하소서. 조금 늦게 가도 용서하소서.”라고 기도한다. 

이 책에서 물음표와 아울러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 문구는 ‘죽음의 죽음’이다. 

“늙은이가 젊은이에게 해줄 수 있는 단 한 마디. MEMENTO MORI 죽음을 생각하라는 말이다. 늙어서 죽음을 알게 되면 비극이지만 젊어서 그것을 알면 축복인 게다. 임산부는 그 뱃속에 하나의 생명과 죽음을 잉태하고 있다는 릴케의 말은 잘못된 것이다. 태어나기 전 아이는 영원히 죽지 않는 수억 년의 생명인 것이다. 그리스 말로 Zoe이다. 하지만 탄생하는 순간 비오 Bio의 개별적인 생명은 죽음과 등을 대고 있는 쌍둥이가 된다. 생이 자라면 죽음도 자란다. 생이 죽으면 죽음도 죽는다. 죽음이란 죽음의 죽음. 조에의 영원한 생명의 자궁으로 돌아간다. 그리스 말로 무덤과 자궁은 동의어이다(tombos, 불룩한 것, 애를 밴 것과 어원이 같다.)”(본문 일부)

또 마음을 사로잡은 단어는 ‘주목’의 반대말이라는 ‘유목’이었다. 주목은 초점을 무엇엔가 맞추고 보는 것이고 유목은 물끄러미 그 무엇을 포함한 주변 환경(자연)까지 바라보는 것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주목(注目)이란 말은 알아도 유목(遊目)이란 말은 잘 모른다. 주목은 한 곳을 주의 깊게 바라보는 것이고 유목은 일정한 초점 없이 사방을 두리번거리는 시선이다. 공자는 세상만사에 주목하고 노자는 자연의 모든 것을 물끄러미 바라본다.”(본문 일부)

지은이의 아내 강인숙 영인문학관 관장은 지난 여름 라디오 인터뷰에서 암 판정을 받고 수술을 받은 뒤, 글 쓰기 위해 항암치료를 거부했다면서, “남편은 해야 할 일이 너무 많아서,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아서, 몸은 늙었지만 정신은 젊어서, 에버그린이어서 살고 싶어 했다”라고 전했다. 

책 제목 ‘눈물 한 방울’은 지은이가 지은 것이며, ‘나 말고 남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을 의미한다고 강 관장은 설명했다. 

지은이 고 이어령은 1933년 충남 아산에서 출생했다..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 및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서울대 재학 시절 《문리대학보》의 창간을 주도하고 ‘이상론’으로 문단의 주목을 끌었으며, 《한국일보》에 당시 문단의 거장들을 비판하는 「우상의 파괴」를 발표, 새로운 ‘개성의 탄생’을 알렸다. 20대부터 《서울신문》, 《한국일보》, 《중앙일보》, 《조선일보》, 《경향신문》 등의 논설위원을 두루 맡으면서 탁월한 논객으로 활약했다. 《새벽》 주간으로 최인훈의 『광장』 전작을 게재했고, 월간 《문학사상》의 주간을 맡아 ‘문학의 상상력’과 ‘문화의 신바람’을 역설했다. 1966년 이화여자대학교 강단에 선 후 30여 년간 교수로 재직하며 수많은 제자를 양성했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개폐회식 총괄 기획자로 ‘벽을 넘어서’라는 슬로건과 ‘굴렁쇠 소년’, ‘천지인’ 등의 행사로 전 세계에 한국인의 문화적 역량을 각인시켰다. 1990년 초대 문화부장관으로 취임하여 한국예술종합학교 설립과 국립국어원 발족의 터를 닦았다. 2021년 금관문화 훈장을 받았다. 에세이 『흙 속에 저 바람 속에』 『하나의 나뭇잎이 흔들릴 때』 『지성의 오솔길』 『젊음의 탄생』 『한국인 이야기』, 문학평론 『저항의 문학』 『전후문학의 새물결』 『통금시대의 문학』, 문명론 『축소지향의 일본인』 『디지로그』 『가위바위보 문명론』 『생명이 자본이다』 등 160권이 넘는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다. 마르지 않는 지적 호기심과 창조적 상상력, 쉼 없는 말과 글의 노동으로 분열과 이분법의 낡은 벽을 넘어 통합의 문화와 소통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끝없이 열어 보인 ‘시대의 지성’ 이어령은 2022년 2월, 89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본문 중에서>

“물음표와 느낌표 사이를 쉴 새 없이 오간 게 내 인생이다. 물음표가 씨앗이라면 느낌표는 꽃이다. 품었던 수수께끼가 풀리는 순간의 그 희열은 그 무엇과도 바꿀 수가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선 호기심을 갖는 것, 그리고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찾아내는 것이다.

스스로 생각해온 88년, 병상에 누워 내게 마지막에 남은 것은 무엇일까 한참 생각했다. ‘디지로그’ ‘생명자본’에 이은 그것은 ‘눈물 한 방울’이었다. 눈물만이 우리가 인간이라는 걸 증명해 준다. 정서적 눈물은 사람만이 흘릴 수 있다. 

나자로의 죽음과 멸망해 가는 예루살렘을 보고 흘렸던 예수의 눈물, 안회의 죽음과 골짜기에 외롭게 피어난 난초 한 그루를 보고 탄식한 공자의 눈물, 길거리에 병들고 늙고 죽어가는 사람을 보며 흘린 석가모니의 눈물, 그 사랑과 참회의 눈물이 메마른 사막에서 우리가 살고 있다.

우리는 피 흘린 혁명도 경험해 봤고, 땀 흘려 경제도 부흥해 봤지만, 딱 하나 아직 경험해 보지 못한 것이 바로 눈물, 즉 박애(fraternite)이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타인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 인간의 따스한 체온이 담긴 눈물, 인류는 이미 피의 논리, 땀의 논리를 가지고는 생존할 수 없는 시대를 맞이했다.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이 있다면 자유와 평등을 하나 되게 했던 프랑스 혁명 때의 프라테르니테, 관용의 눈물 한 방울이 아닌가 한다. 나와 다른 이를 함께 품고 살아가는 세상 말이다. 

눈물 없는 자유와 평등은 문명을 초토화시켰다. 인간이 한낱 짐승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준 코로나 주술을 이길 유일한 길은 타인을 위해 흘리는 눈물뿐이다.

자신을 위한 눈물은 무력하고 부끄러운 것이지만, 나와 남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지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힘 있는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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