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사람이 자연 속에서, 예배 중에, 또는 기독교 모임에서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기독교인들이 교회에서 예배하는 대신 다른 공간에서 예배할 때 달라지는 것이 있나요? 네 가지 예배 공간을 생각하면서 예배의 의미를 생각해 보겠습니다.[예배의 네가지 공간]1. 삶으로 드리는 예배 첫 번째로 가장 큰 예배 공간인 삶으로 드리는 예배를 생각해 봅니다. 하나님은 성도의 모든 삶에 함께하시기에 성도가 무엇을 하든지 예배가 되어야 합니다(고전 10:31). 성도들은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성품을 찬양하며 그분을 경배하는 게 맞습니다. 예를 들어
신앙생활은 새로 태어난 인생의 설레는 모험입니다. 믿음으로 시작하고 믿음으로 이어집니다. 새해에 출발하는 우리의 신앙생활은 얼마나 멋진 모험이 될까요?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꿈을 크게 가지라고 말씀하십니다 (사 54:2). 이스라엘이 부흥하려면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의 비전은 하나님의 마음을 보는 눈 입니다. 히브리 11장은 믿음의 비전을 가진 위인들을 소개합니다. 저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믿음으로 보았고 복종했습니다. 신앙의 모험에 네 가지가 필요합니다.하나님 사이즈로 생각해야 합니다.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현대문학의 거목 고(故) 박완서 작가는 1950년 서울대학교 문리과 대학에 입학하였으나 곧이어 일어난 6.25전쟁으로 오빠를 잃고 갖은 고생을 하다가 생활고로 학업을 중단하였다. 그리고는 집안 살림을 책임지게 된 어린 나이에 미군 부대 PX에서 일을 하게 되었다.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미군 병사들의 가족이나 여자 친구의 사진을 그리는 주문을 받아 초상화를 전문으로 하는 중년의 화가들에게 넘겨주는 일을 했다. 그녀는 그 화가들을 극장 간판이나 그리는 정도의 수준으로 하찮게 여겼다. 그러던 어느 날 그 중 한 사람이 그림 하나를 옆구리에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사람의 행동은 겉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전 7:29), 인간은 타락한 이후 많은 꾀를 내서 살아갑니다. 삶의 영역뿐만 아니라 믿음의 영역에도 이 논리가 침투했다고 봅니다.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 대한 많은 설명과 논쟁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나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지 않고 죄를 묻지 않으신다고 확신합니다.“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히 11:4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음주가무를 즐기지 않는 사람들이 함께할 수 있는 ‘놀이’에 무엇이 있을까? 올해 요즘 세대들은 잘 하지 않는 놀이를 많이 했다. 바로 윷놀이다. 한 청년의 제안을 받았을 땐 시큰둥했는데 일단 시작하니 경쟁심과 승부욕이 작용하며 빠져들었다. 분위기 메이커가 던지는 가벼운 말과 맞장구치는 반응들이 재미를 살렸고 의지나 실력과는 상관없이 나오는 결과에 따른 긴장과 안도감, 그래서 더 중요한 말쓰기를 놓고 벌이는 두뇌 게임, 잡고 잡히는 일, 패색이 짙다가도 사리를 몇 번 하여 판세가 바뀌는 역전의 묘미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지금은 온 지구촌이 이웃같이 가깝고 곳곳의 소식도 모두 손안에 들어오는 세상이 되었다. 하지만 오래 전 이 땅에 온 사람들은 생면부지의 환경 속에서 단절된 채 새로운 삶의 터전을 마련하느라 고국을 그리워할 틈조차 없었다. 아내와 자식을 떼어 놓고 이 땅에 먼저 온 한 지인은 홀로 갖은 고생을 다해가며 오로지 가족을 데려올 생각에 밤낮의 구분이 없을 정도로 뛰었다. 그러다가 외롭고 지치면 카세트 리코더 하나 달랑 들고 바닷가로 나가 노래를 듣고 또 들으며 위안을 삼았는데, 그 덕분에 지금은 노래방에 가면 노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내가 깰 때에도 여전히 주와 함께 있나이다”(시 139:18).우리는 인생의 동반자가 무척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배우자를 잘 선택하려 하고, 친구도 잘 선택하려 한다. 연세 드신 분들은 자녀나 손주들이 좋은 친구 관계를 맺고 신실한 성도들과 교제하며 신앙생활하기를 위해 기도한다. 누구와 동행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이 무너질 수도 있고, 새 힘을 얻기도 하는 것을 지난 날의 삶을 통해 깊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와 함께 지금까지 걸어오며 영향을 주었던 사람들은 누구인가? 나는 누구와 함께 남은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 전도서를 읽으면 힘이 빠지고 허무가 밀려온다고 한다. 전도서에 반복되어 나오는 ‘헛되다’는 단어 때문이다.그런데 이 헛되다는 단어, 또는 보람이나 행복, 쾌락을 추구하기 위해서 하는 일들 앞뒤에 반복해서 나오는 문구가 있다. 그것은 ‘해 아래’이다. 해 아래 있는 모든 것이 헛되다고 말하고 있다.그래서 전도서를 읽을 때, “헛되다”를 “해 아래”와 같이 묶어서 읽어야 한다. 왜냐하면 세상 사람들에게는 '해 아래'만 있지만, 우리에게는 ‘해 위’도 있기 때문이다. 해를 만드시고 주관하시는 창조주 하나님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B.C. 8세기경 남유다는 사면초가, 풍전등화의 위기 속에 있었다. 남북 분열의 시대 또 다른 야곱이 후손이었던 북이스라엘은 시리아와 손잡고 남유다를 공격하려 했다. 혼자만의 힘으로 감당하기 어려웠던 남유다는 외교 전략을 총동원해 이 위기를 극복하려 했다. 얼마 후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새로운 절대강자로 떠오른 앗수르가 서진 정책을 펼쳤고 시리아와 두로와 시돈을 차례로 점령했다. 이어서 기수를 남쪽으로 돌린 앗수르는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키고(B.C. 722년) 이집트까지 진군하려고 했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1989년 4월 15일, 영국 힐즈버러(Hillsborough) 축구 경기장에서는 FA컵 준결승전이 예정돼 있었다. 일부 팬들의 전세버스가 교통 체증으로 연착해 경기장에 한꺼번에 몰리면서 극심한 병목 현상이 벌어지자 누군가에 의해 출구문까지 열렸다. 문의 폭이 아주 좁은 데다가 내부 이동이 어렵도록 설계된 구조에 관중석의 해당 구역이 이미 포화 상태였는데도 경찰은 관중들을 계속 몰아넣었다. 안쪽에서는 이미 사람들이 압사 직전이었는데도 말이다. 결국 경기가 시작되고 얼마 안 돼 그라운드 쪽 관중들은 뒤에서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최근 이태원에서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나서 우리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사건 분석을 하는 프로그램의 한 앵커는 요즘 한국 젊은 세대 사이에서 크리스마스 파티보다 핼러윈 파티를 더 많이 언급하고 있다는 빅 데이터를 제시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문화의 한 단면인데, 교회 안에만 있어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 같아 얼굴이 뜨뜻했다. 예나 지금이나 젊은이들은 신나고 재미있는 것에서 가치를 찾는다. 그때는 교회 중심의 크리스마스 문화가 재미있었는데, 이제는 핼러윈 문화가 더 재미있는 것이다. 크리스마스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 '편지를 부치러 나갔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주머니에 그냥 있으면 가을이다.' 김대규 시인의 시 '가을의 노래' 한 구절이다. 가을이 아니더라도 사람들은 예전처럼 우체국에 자주 가지 않는다. 이메일이 발달하고 쇼핑까지 모두 컴퓨터가 해주니 특별한 일이 아니면 그곳에 갈 일이 거의 없다. 편리하지만 무언가 아쉽고 허전하다. 더구나 집배원이 다녀간 우체통엔 우편물이 넘쳐나는데도 받고 싶지 않은 것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어쩌다 낯익은 글씨라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가울 수가 없다. 글씨도 얼굴도 심지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 빌립보서 2장 13절 14절 말씀입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신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성도 개인의 심령과, 공동체인 교회의 교제 가운데 하나님이 임재하신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크고 영원하신 하나님이 목석같이 무심한 창조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말해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성령으로 거하시며 착한 일을 하십니다."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1:6). 바울 사도의 말입니다.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지난 주말에 지인들과 함께 일행 중 한분 동생이 사는 펠란을 다녀왔다.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농가를 따라 한참을 들어가니 궁궐같이 잘 지어진 집과 그 주위에 넓은 매실나무 농장이 끝이 보이지 않게 펼쳐졌다. 여기 저기 구경하다가 인근 산 속에 매물로 나와 있다는 통나무집 얘기가 나와 들렀다. 산기슭 언덕 끝자락에 지어놓은 이층 큰 통나무집과 바로 아래쪽에 따로 마련된 작은 집도 한 울타리였다.기슭을 따라 이리저리 둘러보고 나오려던 차에 그만 무언가에 찔렸는지 정강이에 날카로운 통증이 왔다. 바지자락을 올
몽골의 양들과 함께 사는 양재철누구나 응답 받기 위해서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기도를 드리고 응답받지 못하면 섭섭한 정도가 아니라 믿음에 대한 회의까지 올 때가 있습니다. 내 믿음이 약한 것인가?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지 않는 것인가? 성경이 거짓말 아닐까? 하나님이 계신다고 속은 것 아닐까? 예수님께서는 자신도 기도를 많이 하셨고, 또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기도하라고 주기도문을 가르쳐 주셨습니다(마 6:9-13).마태복음 7:7-8에서는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하시고, 이어서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
길을 가던 구레네 시몬이 구원의 드라마 한복판으로 끌려나와 억지로 십자가를 졌습니다. 이 경험으로 시몬의 삶이 변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지친 몸을 쉬게 해드렸고 갈보리로 올라가 마침내 참 생명의 근원에 이르렀습니다. 시골 신사 구레네 시몬시몬은 신실한 유대인이었습니다. 북아프리카 이민자의 후손인 시몬은 고국에 돌아와 예루살렘 근처 농촌에 살았던 것 같습니다. 그는 건장하고 힘센 농부였습니다. 시몬은 볼일이 있어 길을 가던 중이었습니다. 십자가 행렬을 따라가는 무리와는 목적과 방향이 전혀 다른 사람이었습니다. 뜻밖의 상황에 몰린 시
곽성환 목사(PMI 바울사역원 대표)친구 목사님 두 명과 함께 가을 소풍을 다녀왔다. 유난히 덥고 지루했던 여름과 작별식을 하고 싶었다. 산마루에서부터 시작될 나뭇잎들의 변화에 남보다 먼저 인사할 겸 찾아간 곳은 오리건에서 가장 높은 후드 산, 해발 3.500미터나 되는 고산이라 한여름에도 꼭대기에는 눈이 남아 있다. 산중턱에는 계곡을 따라 흘러내린 물이 고여 만들어진 커다란 호수(트릴리움 레이크)가 있는데, 속이 훤히 들여다보일 정도로 물이 맑고 발을 담그기 어려울 정도로 차갑다. 피크닉 테이블에 앉아 구워 먹는 삼겹살과 입가심이
김광섭 목사(샴버그침례교회 담임)30년 전 이맘때만 해도 교회마다 금요 철야 예배가 11시에 있었다. 기도가 뜨겁던 교회에서 교인들은 새벽 4시, 5시까지 기도한 후, 어떤 분들은 잠시 눈을 붙인 후 일하러 가기도 했고, 기도원에 가서 철야 기도한 분들 중 더러는 곧장 일터로 출근하기도 했다. 이는 2천 년전 성경 시대의 이야기가 아니고 충분히 기억할 만큼 가까운 때에 현재 교회 생활을 하는 많은 교인들이 경험했던 일들이다.그런데 요즘 같은 추세라면 금요 기도회는 곧 없어질 것 같다. 참석하는 사람들이 점점 적어지기에 금요 기도회의
김학천(치과 의사, 수필가)지난 종려주일 저녁, 스타벅스에서 차를 한 잔 시켜 놓고 지인을 기다리고 있는데, 노숙자 차림의 한 사람이 들어왔다. 무척 남루했지만 그 누구도 개의치 않고 커피 한 잔을 시켜서는 밖에 나가 한쪽 벽 구석에 쌓아 놓은 보따리더미 옆에 쭈그리고 앉아 마시는 모습을 따라가다가 그와 눈이 마주쳤다. 무언가 들킨 듯 겸연쩍어 얼굴을 돌린 나는 차가 식는 것도 잊은 채 상념에 젖었다.석양이 뉘엿뉘엿해질 때쯤이면 길거리에 나뒹구는 나뭇잎들과 더불어 찌든 보따리를 든 노숙자들이 잠자리를 찾아 두리번거리며 어디론가 이동
누가는 그리스도의 사람 되심을 강조하면서, 예수님을 바라보면 “하나님이 사람을 이해하는 분이심을 알 수 있다.”라고 선언합니다. 하나님은 친히 사람이 되셨기 때문에 사람됨을 이해하십니다. “보라 네가 수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라”(눅 1:31). 예수님은 다 큰 어른으로 하늘에서 뚝 떨어진 분이 아닙니다. 여인의 몸에서 아기로 태어나고 자라서 어른이 되신 분이었습니다. 누가복음에 “인자(人子)”라는 말이 스물 세 차례나 나옵니다. 예수님이 사람이시므로 사람인 우리를 이해하시는 것입니다.그러나 그리스도의 신성을 강